1988년부터 1997년까지, F1은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라이벌리들로 가득 찼다. 시작은 같은 팀(맥라렌)에 소속된 세나와 프로스트의 전쟁이었다. 1989년 스즈카 47랩, 세나가 시케인에서 프로스트를 추월하려다 충돌했고 세나는 임시 도로를 통해 복귀해 우승했지만 FIA에 의해 실격 처리됐다. 1990년 스즈카에서는 세나가 의도적으로 첫 번째 코너에서 프로스트를 들이받았고, 세나는 1991년 세 번째 챔피언십을 차지한 후 이것이 의도적인 '보복'이었다고 직접 시인했다.
1992년, 윌리엄스-르노의 나이젤 만셀이 등장하며 새로운 지배자가 탄생했다. 액티브 서스펜션과 트랙션 컨트롤 등 첨단 기술을 집약한 FW14B로 '라이온하트' 만셀은 시즌 16개 레이스 중 9개에서 우승했다. 이 시대 최강자의 자리는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1993년 프로스트의 마지막 챔피언십, 그리고 만셀의 인디카 전향 이후 새로운 드라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1994년 5월 1일 이몰라. F1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주말이었다. 금요일에는 루벤스 바리첼로가 중상을 입었고, 토요일에는 롤란드 라첸버거가 사망했다. 그리고 일요일 7랩, 아일톤 세나의 윌리엄스 FW16이 타무렐로 코너에서 벽을 향해 곧장 돌진했다. FIA는 그의 죽음 이후 스페인 GP까지 단 두 경기 만에 프런트 윙 설계 변경, 디퓨저 단축 등 기술 규정을 즉각 수정했다. 세나의 마지막 레이스는 F1 안전의 역사를 바꿨다.
결정적 순간들
스즈카 충돌 — 챔피언십의 첫 번째 전쟁
47랩 시케인에서 세나가 프로스트를 추월 시도, 충돌 후 세나는 임시 도로로 복귀해 피트스톱 후 우승. 그러나 FIA는 시케인 미통과를 이유로 세나를 실격 처리했다. 프로스트는 챔피언이 됐고 세나는 분노했다.
산마리노의 검은 주말 — F1을 바꾼 사흘
바리첼로(금요일 중상), 라첸버거(토요일 사망), 세나(일요일 사망). 사흘 동안 세 건의 사고가 이몰라를 덮쳤다. FIA는 단 두 경기 후 기술 규정을 긴급 수정했고, 이후 HANS 장치 의무화, 충돌 기준 강화, 서킷 재설계 등 대대적인 안전 혁신이 이어졌다.
헤레스 — 빌르너브와 슈마허의 마지막 결전
챔피언십 최종전. 슈마허가 빌르너브를 향해 방향을 틀었지만 충돌 후 오히려 슈마허의 차가 그라운드에 박혔다. 빌르너브는 그대로 달려 챔피언이 됐고, FIA는 슈마허의 시즌 전체 포인트를 박탈했다.
만셀 FW14B — 기술의 정점
액티브 서스펜션, 트랙션 컨트롤, 세미오토 기어박스를 탑재한 FW14B는 당대 F1 기술의 집약체. 만셀은 첫 5개 레이스를 연속 우승하며 시즌을 압도했다. 상대팀들은 그해 사실상 2위 경쟁을 벌였다.
시즌별 챔피언
🇧🇷 아일톤 세나
McLaren-Honda
🇫🇷 알랭 프로스트
McLaren-Honda
🇧🇷 아일톤 세나
McLaren-Honda
🇧🇷 아일톤 세나
McLaren-Honda
🇬🇧 나이젤 만셀
Williams-Renault
🇫🇷 알랭 프로스트
Williams-Renault
🇩🇪 미하엘 슈마허
Benetton-Ford
🇩🇪 미하엘 슈마허
Benetton-Renault
🇬🇧 다몬 힐
Williams-Renault
🇨🇦 자크 빌르너브
Williams-Renault
핵심 드라이버
아일톤 세나
3회 챔피언
세 번의 챔피언십. 65회 폴포지션, 41회 우승. 모나코에서만 6번 우승했고, 비 내리는 조건에서는 사실상 무적이었다. 1994년 산마리노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죽음 이후 F1은 레이스 중 사망 사고를 21년간 겪지 않았다.
나이젤 만셀
1회 챔피언
'라이온하트'. 1992년 FW14B로 16개 레이스 중 9승. 당시 역대 최다 단일 시즌 우승 기록. 감정적이고 공격적인 레이싱 스타일로 영국 팬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챔피언십 다음 해 윌리엄스와의 계약 갱신 협상 결렬로 인디카로 전향해 첫 해에 IRL 타이틀을 차지했다.
알랭 프로스트
1회 챔피언
세나와의 전쟁에서 두 번 이겼지만 역사는 세나를 더 기억한다. 그러나 4번의 챔피언십과 51승의 기록은 역사상 최고의 드라이버 중 하나임을 증명한다. 1993년 우승 직후 은퇴를 선언했고, 은퇴 이후 두 번 다시 레이싱 시트에 앉지 않았다.
레거시
이 시대는 F1이 진정한 글로벌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로 성장한 시기였다. 세나-프로스트 라이벌리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자동차 경주를 모르는 사람들도 아는 문화적 유산이 되었다. 세나의 죽음 이후 시작된 안전 혁명은 이후 21년간 F1에서 레이스 중 사망 사고를 막아냈다. 이 시대의 F1은 단순한 레이싱을 넘어 인간 드라마의 무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