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르노가 터보차저 엔진을 F1에 처음 선보였을 때, 대부분의 팀들은 비웃었다. 자주 고장나는 르노 RS01은 '노란 주전자(yellow teapot)'라는 조롱을 받았다. 첫 등장 당시 출력은 약 500마력. 그러나 르노는 10년 넘게 연구한 터보 기술을 포기하지 않았다. 1979년 RS10이 F1 최초의 터보 머신으로 그랑프리 우승을 거뒀고, 1983년에는 넬슨 피케(브라밤-BMW)가 터보 엔진으로 첫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1980년대 중반에는 출력이 1,000마력을 넘어섰고, 예선 전용 '부스트 모드'에서는 최대 1,500마력까지 발휘했다. 이는 현재 F1 차량의 출력도 여전히 넘어서지 못한 수치다.
터보 시대는 출력 경쟁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1984년부터 1988년까지 맥라렌이 이룬 성취는 F1 역사상 가장 지배적인 팀 퍼포먼스로 기록된다. 포르쉐(태그 포르쉐) 엔진의 MP4/2와 이후 혼다 엔진의 MP4/4는 경쟁자들과 차원이 달랐다. 1984년 시즌은 팀메이트 니키 라우다와 알랭 프로스트가 챔피언십을 0.5포인트 차로 다투며 F1 역사상 가장 박빙의 결판을 냈다. 1988년 맥라렌은 16개 레이스 중 15개를 우승했는데, 놓친 단 하나는 모나코에서 세나가 혼자 자멸한 레이스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시대를 규정하는 것은 알랭 프로스트와 아일톤 세나의 라이벌리다. 두 챔피언이 같은 팀(맥라렌)에서 서로를 상대로 싸운 1988-89시즌의 드라마는 스포츠 역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치열하고 복잡한 경쟁으로 남아 있다. 계산적이고 냉철한 '교수' 프로스트와 감성적이고 초월적인 '마법사' 세나의 대립은 레이싱을 넘어 철학적 질문을 던졌다. 1989년 스즈카에서의 첫 번째 충돌은 챔피언십을 프로스트에게 넘겨줬고, 이듬해에는 세나가 의도적으로 프로스트를 들이받아 보복했다고 10년 후 직접 시인했다.
결정적 순간들
르노 RS01 — 터보의 씨앗
브리티시 GP에서 처음 출전한 르노 RS01. 초반엔 500마력에 잦은 고장으로 '노란 주전자'로 불렸지만, 르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 도전이 10년 후 F1을 완전히 뒤바꿀 기술 혁명의 시작이었다.
라우다 vs 프로스트 — 0.5포인트 차의 전설
맥라렌 팀메이트 두 드라이버가 시즌 내내 경쟁한 끝에 라우다 72.5점 vs 프로스트 71.5점으로 챔피언십이 결정되었다. F1 역사상 가장 적은 점수 차로 결정된 챔피언십으로 지금도 기록된다.
맥라렌-혼다의 16개 중 15승
세나와 프로스트의 MP4/4는 16개 레이스 중 15개를 우승했다. 이 시즌 2위 팀 페라리보다 두 배 이상 많은 포인트를 기록했다. 유일한 이탈은 세나가 선두를 달리다 자멸한 모나코였다.
윌리엄스-혼다와 혼다 엔진의 지배
혼다는 맥라렌 이전에 먼저 윌리엄스에 엔진을 공급했다. 피케와 만셀의 내부 경쟁 속에서도 혼다 파워는 압도적이었다. 혼다의 F1 첫 황금기였으며, 이는 향후 F1에서 동양 제조사의 가능성을 열었다.
시즌별 챔피언
🇦🇺 알랭 존스
Williams-Ford
🇧🇷 넬슨 피케
Brabham-Ford
🇫🇮 케케 로스버그
Williams-Ford
🇧🇷 넬슨 피케
Brabham-BMW
🇦🇹 니키 라우다
McLaren-TAG
🇫🇷 알랭 프로스트
McLaren-TAG
🇫🇷 알랭 프로스트
McLaren-TAG
🇧🇷 넬슨 피케
Williams-Honda
🇧🇷 아일톤 세나
McLaren-Honda
핵심 드라이버
아일톤 세나
1회 챔피언
1988년 첫 챔피언십. 예선에서의 초인적인 속도 — 1984년 모나코에서는 비가 내리는 상황에서 2위보다 9초 빠른 랩을 기록했다. 비 오는 날의 무적 퍼포먼스, 신을 향한 기도와 레이싱을 연결하는 신비로운 헌신이 그를 전설로 만들었다.
알랭 프로스트
3회 챔피언
'교수'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실수를 최소화하고 포인트를 극대화하는 전략적 레이싱의 대가. 이 시대에만 3번의 챔피언십. 세나와의 심리전에서 먼저 페라리로 팀을 이동한 프로스트는 1993년 4번째 챔피언십 후 은퇴해 두 번 다시 레이싱에 복귀하지 않았다.
니키 라우다
1회 챔피언
1976년 뉘르부르크링 화재로 얼굴에 심각한 화상을 입고도 기적적으로 복귀. 그리고 8년 후 맥라렌에서 0.5포인트 차의 역대 최박빙 챔피언십으로 세 번째 타이틀을 차지했다. '두려움을 다스리는 것'에 대한 그의 철학은 이 시대 레이서들의 정신적 기준이 됐다.
레거시
터보 시대는 F1 기술의 가장 극단적인 실험이었다. 최대 1,500마력의 예선 출력은 현재까지도 F1 역사상 최고 기록이다. 이 시대의 교훈으로 FIA는 1989년부터 터보를 금지하고 자연흡기 3.5리터 엔진으로 규정을 변경했다. 프로스트-세나 라이벌리는 스포츠 문화에서 경쟁의 심리학을 논할 때 가장 자주 인용되는 사례 중 하나로 남았으며, 세나가 사망한 1994년까지도 두 사람은 끝내 화해하지 못했다.